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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강 완 신

큰 방에 불이 켜져있었다. 문 사이로는 TV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마루 아래 토방에 오른발을 올려놓고 워커끈을 풀었다. 그리 마루에 올라서서 군복 깃을 만졌다. 방문을 열었다. 좌측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는 앉아있었고, 아버지는 누워있었다. 나를 제일 먼저 바라본 사람은 할머니였다.

“어이구 내 새끼 왔냐.”

어머니도 놀란 듯이 쳐다보며 안심의 웃음을 보여줬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손으로 등을 살짝 때려서 내 쪽을 쳐다보게 하였다. 아버지도 벌떡 일어서며 역시 안심의 웃음을 보여줬다.

“나 오늘 제대했어요. 절 받으세요.”

나는 의도적으로 더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할머니 순서대로 절을 했다. 모두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할머니부터 절을 해야지 거꾸로 절하면 어떻게 하냐고 웃으면서 나무랬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할머니보다 아버지, 어머니 순서로 절을 했다. 뭐 할머니는 그런 것으로 마음 상해하지는 않는다. 아버지 말대로 순서는 할머니부터 절을 해야 맞았다. 그러나 내가 그런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에 대한 편안함 때문이였을게다. 그 편안함은, 어떻게 보면 이중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할머니를 어렵지 않게 생각하게 되고, 형식적인 예의를 잘 지키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우리 형제는 큰형, 작은형, 누나, 나 순으로 3남1녀이다. 사형제 모두 할머니의 뒷바라지를 받았었다. 군대에 있을 때 손윗 누나가 결혼해서, 그때부턴 우리 형제들 뒷바라지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 할머니 자식이라곤 시골에 있는 아버지와 서울에 있는 고모가 전부이다. 얼마 전까지 고모댁에 머물러 있다가 지금은 시골에서 내려와 지내는 중이었다. 또 집안 농사일에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가 허리가 아파서 일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서울로 올라가지 못하고 어머니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내기가 며칠 전에 끝났다고 했다. 앞으로 복학하려면 올해는 지나야 하기 때문에 시골집에서 일을 하겠다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올라가서 공부해. 아빠와 내가 농사는 지을 테니까 걱정 말고.”

할머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여기 있을래요. 올라가봤자 딱히 공부할 분위기도 아니고.”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면 되지. 니가 일 도와주는 것보다 공부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인게.”

“몇 달만 있다 올라갈께요. 좀 쉰다고 생각하면 되죠”

부엌과 맞닿아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갔더니 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청소를 한 듯했다. 난 방바닥에 엎드려 누워 군대에서 가져온 추억록을 폈다. 그 추억록에는 군대에서 받은 모든 편지를 모아놓았다. 첫 장에 ‘사랑하는 내 망내 손자야’ 라는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글씨 모양이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글씨연습 한 것 같은 서투른 글씨체였다. 맞춤법도 많이 틀렸다. 그러나 나는 이 편지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기에 추억록 첫 페이지에 꽂아둔 것이다. 할머니 나이가 그러니까, 정확히 잘 모르겠다. 일흔은 넘은 걸로 알고 있다. 그 정도 나이면 옛날, 그러니까 할머니 어렸을 적에 글씨를 배운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여자에게 그런 교육을 제공할 사회적 분위기도 아닐 것이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글씨를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친정 아버지가 직접 가리켜 주었다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물어보지 않았고, 할머니도 얘기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서툰 글씨로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과는 다르게 좀 더 문명의 이익을 취할 수 있었을게다. 글을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는 것이 사는데 더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택에 손자들에게 이렇게 편지도 쓸 수 있었으니 할머니에게나 우리 손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군대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받은 편지가 바로 할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그 때 눈시울을 적셨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여러 번 편지를 보냈고, 할머니 혼자서 면회도 여러 번 왔다. 그 때마다 힘드니까 오지 말라고 해도 할머니는 보고 싶으니까 온다고 그 오지를 기필코 혼자서 찾아오는 것이었다.

논에서 돌아와 삽자루를 창고에 넣고 있던 나를 본 할머니는 ‘니가 있으니 든든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솔찍히 그렇게 성실하게 농사일을 도와주지 못했다. 저녁에는 친구들과 술만 마시다가 늦게 들어왔다. 그러면 그 다음날 아침에 당연히 늦게 일어나게 된다. 그 때 어슬렁 어슬렁 그렇게 논이나 밭으로 향했던 것이다. 논 밭일이 어차피 나 없어도 아버지 할머니 두 사람이 해냈던 것들이라, 아버지도 내가 늦게 나온다고 해서 혼내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힘쓰는 일을 할 때면, 그 일은 뒤로 미루고 나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곤 했다.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서 젊은 나보다는 힘이 없었다. 어렸을 땐 그렇게 힘이 쎄 보였는데, 지금은 막내 아들에게 힘을 쓰는 곳에선 많이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가끔 그게 부담이 될 때도 있었다.

정오가 다 될 때까지 늦잠을 잤다.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난 여전히 누워서 들척이다가 간신히 일어나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내뿜으면, 그 때서야 잠이 깼다. 입대전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다. 그런데 군대에서 담배를 제대로 배워왔다. 아니 담배가 없으면 생활이 안될 정도였다. 막 제대해서는 하루에 두 갑도 핀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 많이 걱정했다. 나는 할머니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요해서 계속 폈다. 할머니가 방문을 열었다.

“담배 그만 피워라. 건강에 안좋아”

항상 하는 말이다. 그런 말이 일상적이 되어 나는 습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답도 습관적이었다.

“알았어요.”

“밥 먹어야지. 오늘 니 생일이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난 생일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은 생일이면 파티다 누구를 초대한다,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려 한다. 며칠 전에도 친구 생일 때 신나게 놀았었다. 생일은 자기가 태어난 날이다. 부모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은 날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부모님께 내가 태어난 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학교 다닐 때 가출도 여러 번 했고 소년원에 간 적도 있었다. 군대 갈 때는 가족들에게 아무 말없이 훈련소에 입소했었다. 나는 태어나서 부모님 속만 썩힌 호로 자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생일이면 오히려 피하려고 애써왔다. 할머니는 그런 내 생일을 꼭 기억했다.

조금 늑장 부리다 못 이기는 척 하고 큰방으로 건너갔다. 윗목에 생일상이 차려져 있었다. 할머니는 그 앞에서 두 손을 비비면서 입으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 어떻게든 몸 건강하고 되는 일 다 잘 되게 해줍쇼. 작은 손자가 회사에 취직한 지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

할머니는 항상 손자나 손녀의 생일이면 본인이 있든지 없든지 이런 기도를 했다. 할머니의 종교는 무슨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할머니 말데루 불교라고도 하는데, 주기적으로 절에 가는 것도 아니다. 절에 간다고 해도 불교식 예배를 할 줄도 모르고 하는 방법도 모른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토속 신앙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할머니 기도는 내용이 언제나 똑 부러졌다. 웃어른부터 손자들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기도 내용에 집어놓고 온전하게 도와주기를 빌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그것을 보다가 문득 옛날 기억을 떠올렸다.

언젠가 할머니가 똑같이 생일상을 차려놓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누구 생일이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할머니는 검지 손가락을 할머니 입으로 가져가면서 조용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뭔가 감추고 싶었던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아버지가 할아버지 생일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나는 할아버지라는 사람을 태어나서 본 적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나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집에 없었기 때문이다. 육이오 때 서울에 올라갔다가 행방불명 됐다고 들었다. 그런데 없는 할아버지의 생일을 기억해서 생일상을 차리는 것이었다. 제삿날이라도 알면 제사상을 차리는데,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르는데 제사상을 차릴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이산 가족이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집도 이산 가족에 속한다는 것을 그 때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이산가족 찾기라는 프로가 전국을 강타한 때가 있었다. 그 때에도 나는 우리 집이 이산 가족이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아마 가족 모두가 그것을 알아도 모르는 척했거나 잊어버렸거나 했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기억조차 없었으니 할아버지 자체가 내 인식의 범위를 벗어났던 것이었다. 예전에 진외가 집에서 어떤 아주머니 두 사람이 온 적이 있었는데, 누군지는 기억이 안난다. 할머니 친척쯤 됐었나 보다.

“내가 이산가족 텔레비전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그 말을 듣는 할머니의 눈빛은 기억이 안난다. 우리 집에서도 애써 그 프로를 보면서 할아버지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할머니가 원하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군대에서 우리 부대가 전방으로 이동하여 철책선 근무할 때였다. 우리 소대는 애기봉 OP 를 책임지역으로 하였다. 바로 전방에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이 있었고, 우리에게 보란듯이 선전용 아파트를 지어놓고 있는 북한땅이 보인다. 왼쪽 더 멀리는 날씨만 맑으면 개성시도 보였다. 거기에는 관광대가 있어 관광지로도 활용하고 있었다. 그 곳에는 할머니들이 많이 온다. 모두가 대부분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단순히 그쪽만을 바라보기 위해 오는 것이었다. 북쪽을 바라보면 우는 할머니도 꽤 있었다. 가끔 젊은 사람들이 오기도 한다. 어떤 한 젊은 남자가 근무서고 있는 나에게 와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간첩이 넘어온 적이 있어요?”

“이 곳 강물은 흐름이 빨라서 적이 침투하기에 부적합 곳입니다. 10년 전에 한 번 북한군이 귀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남북한 군인간에 총격이 있었다고 말해주었더니, 그 젊은 사람은 마치 영화속 흥미로운 전쟁씬을 상상이나 한듯이 흥미로워 했다.

그 할머니들과 젊은 남자는 그곳을 찾는 이유는 다를 것이다. 나도 그 젊은 사람처럼 그 할머니들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할아버지가 저쪽 땅 어디엔가 살아있을 지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은 해보았다. 그것은 가슴이 아프다기 보다는 호기심이었을 뿐이었다.

설날 때였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증조할머니가 있어서 근처 사는 할아버지들이 세배하러 많이 왔다. 사람들이 오면 할머니와 어머니는 음식상을 차려주고, 치우고 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세배 손님을 받는 게 하루 일과였다. 할머니는 그런 와중에 세배 온 할아버지들과 약주를 한 두 잔씩 마시면서 말동무를 해주었다. 옆 동네에 귀골이 건장한 할아버지 두 분이 세배하러 온 적이 있다. 할머니는 술 기운 때문이었는지 계속 말을 많이 하였다. 할머니는 부드럽고 또렷또렷하게 정감이 있는 말투를 구사했다.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들이 일어나자 할머니는 그 중 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더 있다 가소’ 하면서 끝까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은 얼굴을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만류에도 다른데 돌아볼 곳이 많다고 가버렸다. 그 할아버지가 가고 할머니는 약주를 두 세잔 더 따라 마셨다.

할머니는 건망증이 정말 심하다. 할머니는 방금 놓았던 물건도 어디에 놓았는지 잊어버리고 하루 종일 찾는 사람이었다. 할머니의 그런 건망증이 짜증날 때도 많았다. 중요한 물건이라면 그래도 찾아보겠는데 중요하지도 않는 물건을 잊어버리고 하루 종일 거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 물건을 찾아준다고 나도 덩달아 시간을 허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건망증이 심한 할머니는 이상하게 가족의 생일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우리 집이 큰 집이라 제사도 많았는데, 날짜를 한 번도 틀리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가 머리가 좋아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생일이나 제사는 모두 음력으로 계산한다. 할머니가 글자를 안다고 해도 달력 밑에 음력날짜를 들여다 보면서 계산하거나 표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옛날 분들이야 음력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지만, 어디에 기록도 하지 않고 할머니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제삿날과 생일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능력에 놀랄 때가 많았다.

할머니의 이런 놀라운 기억력은 아마 집중인 거 같다. 보통 사람들은 굉장히 아픈 기억이나 좋은 기억은 잘 기억해내듯이 할머니가 잘 기억해내는 것은 가족들이 태어남과 죽음이다. 할머니는 살아오면서 이 두 가지 날짜를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기억해내는 것일 게다. 그것이 의도적이다기 보다는 누군가 태어나면 기뻤던 기억, 죽었을 때 슬펐던 기억, 이런 기억들이 할머니의 인생에서 중요한 집중으로 작용했다는 추측할 수 있었다.

생일, 제사의 날짜를 기가 막히게 기억해내서 상을 차리듯이 우리집의 모든 행사는 할머니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행사라 할 것도 없지만 제사상을 차리는 것, 추석 때나 설날 때에 모든 집안의 일은 할머니의 움직임으로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다. 친척들이 제사를 지낼 때 제례의 방법이 잘못되었으면 할머니는 그것을 일일이 지적하고 수정할 정도로 그런 면에서 정통하다. 친척들도 할머니의 말이라면 자신의 주장을 쉽게 접을만큼 할머니는 이런 면에서 절대 실수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할머니의 그런 모습에서는 어떤 고집스러움이 작용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할머니, 당신이 아니면 안된다는…

여름.

눈을 떴다. 한참 여름때라 더위는 둘째치고 햋볕의 강도도 유난히 빛나 눈이 부셔서 잘 뜨지 못할 정도였다. 할머니가 바구니를 들고 뒤안으로 가다가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이 보였다.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 깡마른 몸매의 겉모습은 누가 봐도 약한 외모였다.

“할머니 이제 그만하시고 쉬세요.”

할머니는 또 새벽부터 일어나서 쉴틈없이 일했던 게 틀림없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사람 있냐? 너도 빨리 일어나 논에 가서 아빠일 좀 도와줘라.”

여름이었다. 여름은 일년 중 해가 가장 긴 때이고, 날씨도 가장 더울 때이다. 그런데도 칠십이 넘은 할머니는 쉬는 시간도 없이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일만 하는 것이다. 젊은 사람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 하물며 할머니야 오죽하겠냐 만은 우리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무한 체력의 소유자였다. 그렇다고 겉으로 힘이 쎄다는 것이 아니다. 겉모습에서 보이듯 작은 키에 가냘픈 몸으로 여느 할머니처럼 힘이 있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할머니는 비가 하루 종일 오는 날에 신체적으로 가장 많이 괴로워한다.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말로는 당신은 항상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더 아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서울 고모댁에 있을 때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을때면 몸이 더 홀쭉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었다. 그래서 고모댁에서 평상시 낮에는 버스정류장 20여 개가 넘는 거리를 항상 걸어 다니곤 하였다. 할머니는 평생을 일만 해왔던 사람이다. 그런 쉼 없는 신체 작용이 어떤 리듬을 만들었고, 그 리듬대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신체에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형들이 전주에서 자취를 할 때는 할머니가 뒷바라지와 살림을 담당하였다. 자취방에는 항상 팬티가 있었다. 공장에서 만든 여자용 팬티였는데, 그것을 몇 보따리씩 가져와 실밥을 뜯어 다시 보내주면 한 장에 일원씩 받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해봐야 오천원도 안되는 돈이었다. 그것도 어디냐고 돋보기를 쓰고 열심히 몰두하는 모습에서 어떤 날에는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할머니라는 것을 모르고…

할머니가 시골에 한 번 내려와서 전주 자취집에 가지고 올라가는 짐의 양은 상상을 불허한다. 나도 여러 번 같이 따라갔다가 힘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몸집은 작아도 그 몸집의 두 배 정도의 짐을 들어 날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할머니만의 노하우가 있다. 예를 들어 짐보따리가 다섯 개가 있다. 물리적으로 한번에 옮길 수 없는 양이다. 일단 그 많은 짐을 누구라도 도움을 받아서 버스에 올린다. 버스가 목적지 근처, 즉 전주 자취방 근처 정류장에 내리면 집까지는 거리가 500 여 미터는 족히 된다. 우선 근처에 있는 가겟집에 짐 세 개는 맡겨두고, 들 수 있는 두 개를 골라서 하나는 머리에 이고 하나는 손으로 들고, 다음 가겟집까지 간다. 그곳에 짐 두 개를 맡겨놓고, 이전 가겟집으로 와서 짐 세 개를 가지고 간다. 이런 방식으로 해서 짐을 자취방까지 모두 옮기는 일은 일상화가 되어있다. 가겟집 주인은 그런 할머니를 보고 놀랬다고 한다. 그런 가냘픈 몸매에 힘이 장사라고 하면서 허허 웃기도 했다. 형들은 그것을 항상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런 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것은 할머니의 외부의 힘이 아니었다. 할머니 내부의 무슨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 많은 짐 보따리를 가져가서 손자들에게 먹히고 입히는 즐거움 때문에 그런 힘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오후쯤 되어서 할머니가 나보고 닭을 잡자고 했다. 나는 닭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닭 잡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내가 휴가 나올 때도 집에 있는 닭은 할머니의 무자비한 손에 의해 목졸림을 당했다. 이번에 잡는 닭은 장닭이었다. 할머니가 진짜 나하고 같이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놀려줄 심산으로 하는 말이었다. 할머니 손보다 열 배는 더 큰 장닭의 목 부분을 잡고 돌리니, 일분도 지나지 않아 커다란 장닭은 파닥거림이 없어졌다. 그 다음 할머니는 항상 하던데로 털을 뽑고 내장을 꺼내고 세 시간 정도를 폭 고와버린다. 오랫동안 고와서 나온 물이 몸에 좋다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그렇게 해줘도 잘 먹지 않았다. 단순히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며 그러한 할머니의 악착스러움을 내가 먹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좀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반항 아닌 반항을 해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내일 큰 형이 내려온단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어렸을 때였던 것을 기억난다. 나는 여느 때처럼 밖을 나가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해지름 때가 지나서 컴컴해졌을 때 동네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동네에는 가로등이 간간히 길을 훤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첫 번째 가로등, 두 번째 가로등, 세 번째 가로등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네 번째 가로등을 지나면 우리집에 들어가는 대문이 나온다. 그 세 번째 가로등에서 할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귀찮다는 듯 ‘할머니 왜 나와있어’라도 말했다. 할머니는 두 손에 있는 힘을 다 주고 나를 아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완력에 나는 힘도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안기고 있다. 옆에는 가로등의 불빛이 훤하게 내리고 있었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큰 형이 군대에 간 것이었다.

내가 할머니의 힘에 의해 두 번째로 품에 안긴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쯤 할머니와 내가 서울 고모 집에 갔다가 내려오는 기차에서였다. 기차표를 분명히 끊어서 자리에 앉았고 기차는 출발하였다. 그 다음 역에서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고학년인 듯한 여자아이가 우리 앉은 자리를 기웃거리더니 자기들 자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여학생은 똑똑했다. 할아버지는 순전히 그 여학생을 의지하며 온 것 같았다. 상래도 나는 주눅들어 있는 상태로 할머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 자리가 중독된 것 같았다. 그 여자애는 나라도 일어나서 할아버지를 앉아가게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일어나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나를 할머니 손으로 자꾸 눌렀다. 나는 할머니 손에 한 번 눌림을 당하니, 그 여자의 박박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들릴수록 더 할머니 품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럴수록 할머니는 나를 더 끄집어 당겨 자기 품으로 묻히게 했다. 할머니는 손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타인에게도 이기적이었다. 손자들에 대해서만은 그 무엇도 타인에게 양보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 그래요? 무슨 일로요?”

“휴가 받았어. 나 형수랑, 조카도 같이 내려올 거야. 작은형도 내려온다고 하드라.

“작은형도요? 누나만 못 내려오네.”

“누나야 매형이 휴가를 받아야지.”

할머니는 오후 내내 끊임없이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 친구와 술 마시러 동네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옛날 그 가로등을 지나가고 있는, 낮 익은 우리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작은 손자는……”

길가에 돚자루를 펴놓고 가로등을 조명삼아 동네 할머니들이 정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동네에서 인정이 많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내 평생 살면서 남한테 미움 한 번 받은 적 없었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정말 할머니는 타인에 대해서는 조건없는 베풀어주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할머니 말대로 미움은 커녕 인정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목소리에서부터 온유함이 흘러나왔다. 할머니는 자식자랑, 손자자랑을 많이 했다. 그런 할머니를 아니꼽게 볼 수도 있었지만, 동네 할머니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평소 모습에서 이미 신뢰가 쌓인 사람이므로. 그런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 자랑할 것이 없는 것 같은데, 할머니는 꼭 나의 자랑을 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싫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못되게 하는 것이 많은데, 그런 것들은 한마디도 거론 안하고 꼭 잘 된 일만 말하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그런 모습은 아직까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그 무엇인가 만족감을 찾으려고 했다는 추측이 들 뿐 왜 그리 자랑하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것도 할머니라는 것이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얘기하다가 12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방의 불이 다 꺼져있는 것을 보니 모두 자는 것 같았다. 이불을 깔고 누웠다. 눈을 감았는데도 문틈으로 형광등의 강한 불빛을 느낄 수 있었다. 부엌에서 내 방으로 불빛이 들어온 것이다. 부엌과 내 방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방문이 살짝 열리면서 할머니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뭣 좀 먹을래?”

12시가 넘었는데 뭐좀 먹으라니, 황당하기도 해서 짜증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안먹어요. 이제 주무세요”

“술 조금만 마셔, 그러다 속 버릴라.”

할머니는 문을 닫았다. 그런데 부엌에서는 계속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보니까 12시 30분을 가르켰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갔다. 할머니가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순간 화가 났다.

“할머니 지금 몇 신데 음식을 만들어요.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 주무세요.”

“내가 하는데로 놔둬.”

할머니는 비녀는 방에 놔두고 잊어버렸는지 긴 머리를 풀어헤쳐 놓은 것을 보니 잠을 자려다가 나온 것 같았다. 내일 쓸 음식을 다 만들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충분한데 더 만든 것일 게다.

“그대로 지금 너무 시간이 늦었잖아요. 내일 하면 되잖아요.”

할머니는 나이 들어가면서 더 악착스러워졌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았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잠이 안와서 그러니까 내러려 둬”

더 말해봤자 속상하기만 할 것 같아서 문을 닫고 들어와 버렸다. 부엌에서는 계속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방의 불을 꺼버렸다. 할머니에게 시위하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참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에 부엌불이 꺼졌다. 내 방문이 조금 열리더니 이내 닫혔다.

하늘은 엷은 구름으로 덮혀있었다. 해는 그 구름에 갇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물결이었다. 해수욕장이 물은 그다지 맑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바닷물에서 물장구를 치고 수영한답시고 왔다갔다 신나게 놀았다. 어머니는 바닷물이 허리에 좋다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었다고 여기 온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물속에 몸을 반쯤 잠겨놓고 움직이지도 않고 웃으면서 앉아있었다. 큰 형과 작은 형은 멀리까지 들어가서 한창때 유년의 즐거운 낭만을 즐기듯이 물장구와 장난에 빠져있었다. 형수는 조카를 안고 물가에 나와서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동시에 조카에 신경쓰기에 바빴다. 할머니는 큰 형과 작은 형을 바라보면 걱정스런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멀리 가지 말아라.”

나는 작은형수 될 사람과 작은형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리고 모델을 만들어 주겠다고 익살을 떨며 사진기를 얼굴 가까이 이리저리 대고 찍었다. 가족 사직은 내가 전부 도맡아서 찍었다.

모처럼 가족이 전부 모여 해수욕장에 갔다. 누나만 빠지고 우리사고는 단합대회처럼 약속하고 해수욕장에 놀러 간 것이었다.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 만나 담소와 술을 함께 나누는 중이었다. 우리 가족은 뭍으로 나와 오리 탕, 뜨거운 여름에 뜨거운 해수욕장에서, 과 맥주를 들이키고 네 시간이여 동안 바닷가의 즐거운 비명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 현상을 했다. 할머니 얼굴을 가까이 찍은 사진이 보였다. 같이 사진 찾으러 갔던 친구가 그 사진을 보자마자 ‘진짜 잘 찍었다.’ 라고 말했다. 얼굴부분에서 가슴부분까지 그 사이를 찍었는데, 할머니의 웃음과 얼굴 부위부위 파인 주름살이 선명하게 나와 ‘할머니’라는 주제를 갖고 찍힌 것처럼 여실히 드러난 걸작(?) 이었다.

며칠간의 휴가를 끝낸 형들은 조카들을 데리고 다시 도회지로 떠났다.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고 할머니와 어머니의 웃음은 다시 수그러들었다.

아버지가 오후에 농약을 하자면 어디 가지 말라고 부탁했다. 농약 뿌리는 파트는 아버지가 했고, 나는 아버지가 이동하는 곳을 따라다니면 줄을 조정했다. 농약 줄을 잡으려면 힘이 상당히 있어야 한다. 70여 미터의 긴 거리에서 줄을 끌어당겨 농약 하는 사람이 최대한 편하게 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농약 줄 잡을 생각도 못했고, 할머니는 힘이 없어서 못하기 때문에, 그 일만은 꼭 나를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오늘 오후에는 밭을 하고, 내일은 논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오후가 되어 경우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농약 통에 농약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농약 통에 농약이 뭉치지 않게 내 키보다 약간 작은 대나무 적개로 잘 섞었다. 경운기가 밭 근처로 옮겨지고 농약뿌리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할머니가 밭으로 왔다는 나는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할머니는 작업을 조금 지켜보다가 들어갔다. 날이 점점 더 어두워져서 앞이 조금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작업이 계속되었다. 그 동안 아버지와 나는 조금씩 안 좋은 감정이 쌓여가고 있었다. 내가 줄 잡는 방법이 맘에 안 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고집대로 그대로 잡았고, 아버지는 계속 나를 나무랬다.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순간적으로 내 신체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 아버지 보는 앞에서 줄을 던져버리고 그 자리에서 뛰쳐나와버렸다. 그 때 어머니가 경운기 앞에서 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가 나를 보곤 왜 그러냐고 했지만, 나는 아무 말없이 화난 얼굴로 집으로 와 버렸다. 그 이후로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곧장 밖으로 나가 술을 마시다 새벽녘에야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곯아떨어졌던 것 같다.

다음 날 나는 수그러들었다. 아버지도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어제 일을 상기하면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농약을 하자고 졸랐다. 어제 일에 대한 반성이란 게 다분히 끼어있는 행동이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하고 그러자고 했다. 아버지는 최근 들어 나에게 말을 자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나보고 뭐라고 혼내거나 하면 나는 집을 나가버린다, 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자퇴를 하면서 가출이 시작되고, 그런 과정에서 아버지는 나에 대해 침묵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자식 이길 부모 없다고 하듯이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조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자식 눈치를 살피며 세월의 회전을 덧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논에 농약이 시작되었고 나는 어제보다 더 적극적으로 땀을 흘려가며 줄을 땅겼다. 할머니의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손에는 시장바구니가 들려있었다. 내 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주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해서든 아빠 비위를 맞춰줘라.”

눈물을 흘리면서 할머니는 얘기했다. 아버지는 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역시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듣고 말하지 못한다는 장애 때문에 세상 사는데 많은 불편을 느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과 순도 마시면서 대화-손, 입 모양, 약간의 소리-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술주정과 놀이 등등 보통 정상인들이 하는 그런 것들을 약간의 불편은 동반되었겠지만 똑같이 즐겼던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초등학교라는 정규교육과정을 마쳤고, 글을 읽거나 신문을 볼 때도 아무 불편이 없었다. 오히려 세심한 관찰력이나 꼼꼼함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이나 부러움을 받을 정도로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자식이 둘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행방불명 되기 전에 아버지는 세상에 나와있었고, 고모는 아직 뱃속에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애기 때 병을 앓고 나서 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여인네들의 ‘한’이란 게 자주 언급된다. 할머니도 예외 없이 ‘한’이란 것을 많이 간직하고, 그것을 삭히면서 살아왔겠지만 아버지의 말 못하는 장애에 대한 것을 가장 큰 한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때문에 우는 것을 자주 봐왔었다. 아버지가 말을 못하기 때문에 수모를 당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말만했어도 이런 일은 없을텐데, 라는 한 숨을 쉬는 것을 많이 봤었다. 어제 내가 한 행동이 할머니의 마음속에 들어갔고 다시 그것이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이었다.

“알았어요.”

나는 할머니의 그런 눈물만 보면 그러지 말아야, 한다 하면서 더욱 화가 났다. 할머니가 세상을 너무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태양은 강렬했다. 밭에서 익어가던 고추는 그 태양의 빛을 받아 더욱 더 빨갗게 달아올라서 빨리 따주어야만 했다. 일손이 모자라 고추 농사를 많이 짓지는 못했는데, 고추가 익을 때는 한 번에 많은 손이 가기 때문에 낮에 뜨거운 볕에도 아랑곳 없이 고추 따는데 시간을 다 보낼 수밖에 없다. 누워만 있던 어머니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할머니와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밭에서 헬슥한 얼굴로 하루종일 고추 따는 일에 매달렸다. 그날 저녁에 어머니의 허리 아픈 신음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나를 보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고추 못따게 니가 말려라”

“내가 말린다고 돼요?”

어머니의 고집은 대단하다. 그 고집을 이어받아서인지 우리 형제들도 하나같이 한 고집한다고 소문이 났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아프면 집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의 시어머니인 할머니는 내가 생각할 때는 천사였다. 누군가 옛날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우리 여인네들의 제일 크나큰 고통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우리 집에서는 예외였다. 할머니가 어머니 대하는 것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위해줌’ 이었다. 할머니는 항상 어머니를 위해줬고, 어머니도 그런 할머니를 경계와 삭힘의 대상보다는 애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딱 한번 할머니로 인해 어머니의 눈물을 본 적이 있다. 어릴 때였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크게 싸웠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맞으면 박박 기어서라도 물어뜯고 마는 성격이었다. 어머니의 그런 악착에 아버지가 두 손 들은 적도 많았다. 그런 과정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말 못함을 이용해 할머니의 ‘한’을 건드렸다.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온화했던 사람이 갑자가 호랑이가 되어 어머니를 꾸짖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 때만은 달랐다. 어머니는 끝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의 꾸지람을 듣고 흘리기 시작한 눈물은 어머니를 무엇인가를 더욱 더 하게 만들었다. 부엌에서 설거지와 뒤안에서 불떼는 것, 이 두가지를 번갈아 하면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눈물이 더 진해질수록 어머니의 손놀림은 더 빨라지고 순간순간 할 일을 찾으며 계속 울었다. 그 때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것일까. 어머니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모두가 다 뜻이 안맞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만은 믿었던 것 같았다. 유일하게 믿는 할머니에게 모든 것을 맡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마저 놓쳤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을게다. 이 한 사건으로 어머니의 할머니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리는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그런 믿음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어지지 않았다.

가을.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할머니는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로 날 흔들어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고 했다. 추석이었다. 새벽에 우리 집 제사를 지내기 전에 먼저, 온 식구가 작은집에 제사 지내러 가야 했다. 나는 일어나 세수를 간단히 하고 부스스한 눈으로 양말을 신고 제사상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솜씨일 게다. 아버지, 형들의 뒤를 따라서 동네 길을 내려갔다. 동네 어른들이 왔다 갔다 하며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나도 어른이 보이면 인사를 했다. 작은집 제사를 마치고 큰 집인 우리 집에 모두 몰려와 제사를 지내고 식사를 마쳤다.

오전 11시쯤 되어 우리 형제들은 산소에 갈 준비를 했다. 산소에는 할머니도 항상 같이 갔다. 추석 때 가는 산소는 집에서 약 8킬로나 떨어진 곳이다. 도착해서도 경사가 급한 산속으로 한 시간은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나는 그곳 가기를 몹시 꺼려했다. 지금은 도로가 나서 차를 타고 가지만 5년전까지만 해도 거기까지 도착하기 위해선 모두 걸어야 했다. 큰형, 작은형의 승용차 두 대를 각각 나눠타고, 산소가 있는 산마을에 도착했다. 일행은 할머니, 아버지, 큰형, 작은형, 나 이렇게 다섯이었다. 산소에 가면 할머니가 항상 상을 차리기 때문에, 거기에 따르는 준비물은 할머니가 손수 다 준비하였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산은 험악했다. 칠십 노인이 가기에는 경사가 급한 곳이 많았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무탈없이 잘도 올랐다. 좁은 숲길이 나왔을 때 동네 형을 만났다. 큰형 친구였다.

“얼굴이 왜 이렇게 변했어요?”

동네형이 할머니 얼굴보고 하는 말이었다. 몇 년만에 보는 건데 너무 늙어버렸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3년전부턴가 틀니를 했다. 서울 고모가 흔들기는 이를 전부 다 빼버리고 틀니를 맞춰줬던 것이다. 그런데 그 틀니를 끼고 안끼냐에 따라 할머니의 나이가 십 년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할머니는 흰머리가 한 가닥도 없었다. 머리가 온통 새까맣다 보니 자연히 겉모습은 젊어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은 할머니 나이를 듣고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나이에 비해 싱싱한 머리칼을 가졌다. 이번에는 틀니를 끼고 오지 않았다. 아니 잊어버린 것이다. 할머니는 잠잘 때 틀니를 빼놓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틀니가 없어 오전 내내 찾아봤는데 결국은 못 찾았다. 틀니를 빼면 할머니의 양쪽 볼이 쏙 들어간다. 그러면 머리는 검은 머리지만 단번에 할머니의 늙음이 티가 났다.

나는 할머니의 늙은 모습이 보기 싫었다. 5년 전에 돌아가신 증조할머니 생각이 나기 때문이었다. 증조할머니는 틀니조차 하지 않았었다. 처음부터 증조할머니는 이가 없었다. 아니 예전에는 있었겠지만 여하튼 내가 보았을 때는 아예 이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할머니 회갑 때 증조할머니와 나란히 병풍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은 사진이 있다. 이가 없는 증조할머니는 나이도 그랬거니와 훨씬 늙어 보였다. 그런데 그 증조할머니의 사진이 이젠 할머니에게서 보이는 것이었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는 삼 일상 내내 머리를 풀어헤치고 얼굴에 슬픔이 떠나지 않았었다. 할머니의 시어머니로서 불만도 많았을 것 같은데 할머니는 증조할머니를 언제나 잘 모셨다. 면사무소에선가 효수상을 줬는데도 할머니는 그것을 거부하고 받지 않았다. 자기는 그런 상을 받을 정도로 효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악착같이 받지 않으려고 했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시어머니를 원망했었는지도 모른다. 그 양심을 감추지 못하겠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좋은 며느리였다.

묏자리가 나왔다. 고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묘가 나란히 보였다. 우선 작은형과 나는 준비해온 낫으로 뾰족뾰족 튀어나온 작은 나무들과 풀을 자르고 묘자위를 다듬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상을 차려놓고 맨손으로 작은 풀들을 뽑아냈다. 증조할머니 성묘를 할 때 제례가 다 끝났는데도 할머니는 뭐라고 소원 비슷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증조할머니도 또한 자식과 손자, 증손자를 위해 자신의 삶보다는 희생을 신조처럼 삼으며 살다간 사람이다. 이렇게 한줌의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증조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손으로 목살을 잡으면서 ‘빨리 숨이 끊어졌으면’하고 갈구했다.

아버지가 누래진 들판 위에서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다. 일년 농사를 마무리 할 때가 다가왔다.

겨울.

함박눈이 왔다. 올해 첫 눈은 예년보다 빨리 오고 적설량이 굉장히 많았다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 덮였다. 이제 우리집도 농사일이 없어졌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할머니가 내 방문을 열고 살며시 들어왔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나이타로 불을 켜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나는 설잠이 들어서 살며시 눈을 떴다. 담배를 내뿜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뭔가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담배를 피운다. 예전에는 담배를 종이에 말아 피웠던 기억이 있다. 그 담배 상자가 지금도 있다. 담배 피우는 때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속상하게 했거나, 할머니의 괴로움을 삭힐 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사람들의 이목을 중요시했다. 자신이 남편없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타인을 대할 때는 언제나 즐거운 말과 표정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담배 피우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릴지 모르는데도 담배는 끊지 않았다. 못 끊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마음속의 남이 모를 한을 담배를 피움으로써 잊어버리려 한 건지,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고 난 후에는 언제나 눈에 초점을 잠시 잊어버렸다. 멍한 상태가 한 동안 지속된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건강상 문제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몽롱한 상태를 한동한 유지하려고 담배를 피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담배 피우는 모습은 달랐다. 내가 특별히 속상하게 한 적도 없었다.

“할머니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돌아보신 할머니의 눈에는 이미 슬픔의 기색이 역력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었다. 그 위에 흰색 털외투까지 두르는 것을 보니 어디 멀리 갈 모양인 것 같았다. 할머니는 어디 도외지를 갈 때는 항상 한복을 입고 갔다. 단 한번도 한복을 입지 않을 때가 없었다. 어쩌면 불편할지도 모를 그 한복을 고집스럽게 입고 다녔다.

“어디가세요?”

“진외가집에 가볼란다.”

“진외가집에는 왜요?”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조용하라는 듯,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라는 듯, 얼굴엔 여전히 슬픔의 기색이 역력했다.

“진외가집 할어버지 돌아가셨다.”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할머니의 친남동생이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 따라서 진외가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진외가집 할아비지를 보았을 때는 상당히 젊고 건강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런 것을 조용히 하라면서까지 비밀에 붙이고 싶은 게 무엇 때문인지 나는 잘 모른다. 형제애?, 할머니는 진외가집을 떠나 우리집에 온지 5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미 시집 식구가 된 것이다. 이런 것 또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의 한부분일 것이다.

할머니는 마당을 거쳐 대문밖을 빠져나갔다. 함박눈은 더욱 많이 내리고 있었다. 검은 머리는 이미 눈으로 인해 하얗게 뒤덮였고, 할머니의 뒷모습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속으로 파묻혀 들아가 점점 희미해졌다. 마당에는 할머니의 털신 발자국이 있었다. 할머니가 지나간 자리를 선명히 나타내주었던 눈위의 발자국들은 함박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라디오에서는 폭설이 예상된다는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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