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랑section

화양리핸드폰 1999

강 완 신

승용차에서 내린 그는 “MUSIC WORLD”라고 쓰인 간판이 걸린 레코드샾쪽으로 다가갔다. 화양리 핸드폰은 여전히 셔터가 올라가지 않은 그 레코드샾의 길다란 계단 맨 위쪽에 엉덩이를 걸친 채 다리 가랭이를 어깨 넒이만큼 벌리고, 양팔의 마디부분을 감싸쥐듯 얹어놓은 자세에서, 핸드폰을 오른손으로 부여잡고 앉아있었다. 핸드폰치곤 상당히 큰 것이였는데, 검정색으로 칠해진 몸체에 안테나가 유난히 굵었다. 화양리핸드폰은 그것을 갖고 언제나 이 시간 이 장소에 어김없이 앉아있었다. 지나가던 중년 여자가 화양리핸드폰을 힐끗 보고 지나갔다. 보도블럭 우측 가장자리에 박혀있던 소방호스봉은 빨간색이었다.

화양리핸드폰과 시선이 마주친 그는 급히 몸을 돌려 레코드 가게 오르쪽 통로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는 화양리핸드폰의 눈이 그의 눈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계단을 다 오른후에야 깨달았다.

문을 따고 들어온 비디어 감상실 안은 눅눅한 습기로 후덥지근했으며, 탁한 공기는 갑갑함을 더했다. 그는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고 금붕어 밥을 줬다. 자리를 옮겨 창가로 가 비,디,오,감,상실, 이라고 쓰인 창문중에 세 개를 열고 고개를 내밀어 밑을 내려다보니 화양리핸드폰은 여전히 웅크린 자세 그대로 앉아있었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와 각 열람실 문을 열고 있을 때 철판으로 만들어진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비?”

안쪽에서 그가 약간 과장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예, 단비예요.”

“오늘은 일찍 왔군.”

“삼십분 더 일찍 온 것 뿐인데 빠르다고 생각을 하시네요.”

“잠깐 기다리고 있어.”

그가 나머지 비디오 열람실의 작은문을 다 연 후 단비에게 다가갔을 때 단비는 어항안에 붕어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조금 전에 줬는데.”

단비에게 다가선 그는 뒤에서 머리에 키스를 하면서 손으로는 유방을 만졌다. 그는 단비를 소파위에 밀어 눕힌 다음 치마를 걷어올리고 바지의 허리띠를 풀었다. 소파위에선 엉덩이가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구두가 벗겨지지도 않은 채 두 다리는 허공을 가로졌다가, 오른쪽 구두가 땅에 떨어졌다. 시계의 초침은 열 시 삼십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고, 요란한 차소리가 창문밖에서 스며들어왔고, 어항 속의 금붕어가 밥을 열심히 씹고있었다.

“나 임신했어요.”

윗도리의 단추를 만지면서 단비가 말했다.

“음악소리가 너무 시끄럽군.”

“무슨 음악소리가 들린다는 말이죠?”

단비는 화를 내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밑의 레코드가게가 문을 연모양이었다.

현관문을 나간 그는 씩씩거리며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와 몸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한 발자국 나서는 순간 뭔가 검고 물컹한 물체와 부딪쳤다. 그와 화양리핸드폰은 깜짝 놀란 자신들의 몸을 추켜세우기도 전에 핸드폰이 바닥에 뒹구는 것을 목격했다. 화양리핸드폰은 유난히 큰 동작으로 바닥에 무릎을 굻고 손으로 핸드폰을 낚아채어 품에안았다. 그는 화양리 핸드폰에게 다가가서 핸드폰 괜찮냐고 물었지만 화양리핸드폰은 그것을 잠바의 옷안으로 감추고 벌벌 떨고있는 것이었다. 허리를 약간 구부려 미안하다는 표시를 해봤지만 화양리핸드폰은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으면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든 팔뚝을 잡으면서 어디 괜찮은지 보자고 잡아당기자 옷깃속에서 핸드폰을 들었던 손이 튀어나와 그를 밀치면서 입으로는 뭐라고 떠들더니 이내 보도블럭위를 달려갔다. 그의 눈은 화양리핸드폰을 끝까지 따라갔다. 화양리핸드폰은 이백여미터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멈추더니 버스에 올라탔다.

- 엷은 붉은색을 띄는 보도블럭은 동그라미 무늬였다.

그는 돌아서서 “MUSIC WORLD”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이 붙은 가게로 들어갔다. 주인인듯한 사람이 마대질을 멈추고 그를 신경질적인 눈으로 쳐다봤다.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음악이 스피커를 통해 거칠게 품어져나왔다.

“음악소리가 큼니까?”

단조로우면서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목소리였다.

“음악소리를 낮춰주시죠.”

“이정도 소리야 어느 레코드가게나 다 트는 것 아닙니까? 너무 과민반응 하는 것은 그쪽인 것 같은데요. 이런 것도 이해 못해주면 위,아래층에 붙어 있으면서 어떻게 같이 영업할 수 있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레코드 가게 주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음악소리를 좀 낮춰주십쇼. 제가 하는 일에 방행가 되니까요.”

“아침에 와서 가게문 열고 청소하는 것 뿐이 더 있습니까? 이렇게 맨날 무슨 거창한 일을 한다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흘러나왔다. 귀찮기도 하고 할 말도 없어, 그는 레코드 가게를 나왔다. 계단을 올라와 비디오 감상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단비가 보이지 않았다. 간 모양이었다. 오늘은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냥 가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디오 감상실 안을 마대걸레로 대충 청소하고 차소리와 음악소리가 들어오고 있는 창문을 닫았다. 음악소리는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는 소파에 누어 “니 이름이 뭐지?” 라고 내밷었다. 배가 기형적으로 볼록한 금붕어는 여전히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이쪽 저쪽에서 영어, 중국어, 음악, 폭발음, 신음소리 등등 갖가지 소음이 들여오는 비디오 감상실 안에 있는 카운터에서 그는 종이를 올려놓고 연필굴리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시계의 초침은 열 한시 삼십분을 약간 못미쳤다. 밤이여서인지 창문박에서 들려오는 차소리는 더욱 요란했고, 사람들의 박작거리는 소리도 거기에 한 몫 더했다. 빨간불, 노란불, 녹색불, 가게앞의 거리는 온갖 빛의 천국이었다.

그 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둘 다 대학생인 듯한 모습이었는데, 한 명은 여자이고 다른 한 명은 남자였다. 여자가 남자의 옆구리에 팔장을 끼고 그의 앞에서 웃고 있었다. 그도 따라 웃어주긴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열 두시까지밖에 영업을 안합니다. 경찰 단속이 심해서요.”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데 여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고있었다.

“지금은 열 두시가 되지 않았잖습니까”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다.

“지금 비디오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열 시 이전에 왔습니다. 열 두시 전에 다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고 내일 오시죠?”

그는 남자가 자기 얘기를 듣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는 팔장낀 손을 자꾸 흔들거리며 립스틱을 너무 바른 입술에서 루즈 덩어리가 떨어질 것 같은 입으로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오늘만 안되겠습니까? 잘 곳이 없어서 그럽니다. 다른데는 심야영업도 한다는데 여기는 왜 안된다는 겁니까?”

그는 이 남자가 사람을 상당히 귀찮게 한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요 앞에 여관도 많은데 거기 가서 자면 되잖소.”
그의 말이 위협적으로 들렸는지 두 사람은 출입문을 열고 나갔다. 문은 스프링 작용으로 스스로 천천히 당혔다. 개새끼라는 말이 벽을 타고 울려왔다. 그는 그냥 자라고 할 걸 괜히 보냈다고 후회했다.

다음날 그는 승용차안에서 푸른색의 셔터가 내려져 있던 그 레코드 가게 앞에 여전히 웅크린 자세로 앉아있는 화양리핸드폰을 바라봤다.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서서히 모습이 바뀌어졌지만 차이나는 것은 없었다. 핸드폰의 안테나가 유난히 크고 검어보였다. 남루한 잠바에 몇 년을 입은듯한 때절은 갈색바지는 계단을 오히려 더럽혔다. 승용차를 주차하고 화양리핸드폰에게 다가갔지만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화양리핸드폰 옆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서 문에 열쇠를 꽂았는데 문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먼저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눅눅한 습기에 여자 화장품 향기가 섞여 지독스러운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단비가 소파에 앉아서 어항에 금붕어 밥을 주고있었다. 미니스커트의 밑으로 하얀 다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는 단비에게 다가가 립스틱도 바르지 않은 입술에 키스를 퍼부어댔다. 손은 치마를 위로 올렸고, 키스를 멈추지 않은채 바지를 내려 일을 끝냈다. 어항속의 조그마한 물레방아는 끝없이 물방울을 솟아올려보냈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금붕어는 입을 계속 뻐끔거렸다.

그의 오른속은 단비의 머리를 감쌌고, 단비의 왼손은 바지가 내려간 그의 사타구니사이에 올려놓았다.

“이름이 뭐야?”

“단비!”

그는 비디오 감상실 안에 불이 켜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이 예쁜데.”

“내가 만든거에요. 예전에 저랑 같이 살지 않았던 엄마는 나에게 언젠가 비단으로 만든옷을 사오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나는 ‘비단’을 거꾸로 한 ‘단비’라는 이름을 만들고, 항상 엄마를 기다렸어요. 엄마는 멀리 갔었거든요. 내 비단옷을 사주신다고.”

소파에 등을 기대로 누워있는 그의 등에서 땀줄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비디오 감상실은 매우 더웠고, 습기 또한 많아서 답답했다.

“엄마는 비단옷을 사가지고 왔니?”

“어제 병원에 가봤어요.”

소파 밑 바닥에서 일정한 음의 괴성이 들렸다. 그는 일어나서 오늘은 단단히 일러주고 오겠다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바지를 올렸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에 음악소리가 귀를 찌를 듯 커졌다. 그는 레코드 가게의 유리문 앞에서 들어가려다, 문득 멈춰섰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봤지만 화양리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가게앞 계단을 내려온 그는 시선을 더 먼곳에 응시하여 화양시 시내를 관찰했다. 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오른손에 핸드폰을 잡은 채 귀에 대고 걸어가고 있는 화양리핸드폰이 보였다. 그는 재빠르게 그곳으로 뛰어가 오미터정도 떨어진 곳에서 화양리핸드폰과 걸음을 맞추며 걸어갔다. 정류장에서 멈춘 화양리핸드폰은 그 핸드폰에 대고 무슨말인가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의 남루한 옷차림을 한 번씩 훓어봤다. 구름 한 점 없는 초여름의 아침이었다. 이 곳 저 곳에서 반팔차림의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귀에 댄 핸드폰을 내린 화양리핸드폰은 두꺼운 잠바 안쪽으로 핸드폰을 감췄다. 209번 버스에 올라탄 화양리핸드폰은 차비도 내지않고 당당하게 버스 뒷자리로 걸어가서 이쪽 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는 화양리핸드폰이 탄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쳐다보고난 후 다시 발걸음을 비디오 감상실로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소파에 아무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레코드 가게 생각이 났다. 오늘은 그놈의 스피커를 다 때려부술려고 맘 먹었었는데, 시간이 많기 때문에 꼭 지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비디오 감상실의 불을 켠 다음,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나서, 창문을 닫았다. 배가 기형적으로 많이 나온 금붕어에게 밥을 주고, 그는 카운터에 종리를 올려놓고, 앉아서 연필굴리기를 하였다.

오후에 접어들자 손님들이 많이 몰려왔다. 자리가 모자라서 늦게 온 사람들은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거나 진열장의 비디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대여해준 비디오들은 액션이나 멜로물 투성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야한 영화 없냐고 대뜸 물어오면 그는 아주 즐거운 듯 찾아주지만 속에선 화가 났다. 더 불쾌한 것은 단비와의 장소에서 오붓하게 앉아있는 커플을 보면 더욱 화가 났다.

열한 시 반이 넘은 저녁 늦은 시간에 어제 왔던 대학생인듯한 남자와 여자가 팔짱을 끼고 또 왔다. 립스틱을 어제보다 더 짙게 바른 그 여자가 이제는 대들 듯 왜 안되냐고 따졌다. 그러면서 그 여자 그 남자는 투덜대면서 그와 단비와의 장소-소파-로 가서 아예 앉아버렸다. 그는 손님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 안을 다 정리하고 불은 끈 다음, 안나가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조용히 얘기해 주었다. 다행히 그들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현관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들은 나가며서 더럽다는 말을 밷고갔다. 그는 다음에 오면 재워주겠다고 맘먹었다. 그런데 그 소파만은 절대 안지 말라는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을 닫고 캄캄한 계단을 내려온 그가 네온싸인이 붉으락 푸르락 반사되는 입구에 내려서는데, 눈가의 화장이 검은색의 숯을 흘려놓은 것처럼 양볼에 묻혀 더럽혀진 얼굴을 한 단비가 서있었다. 단비는 울고있었다. 그는 단비가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얻은 채 그의 승용차로 데리고 갔다.

집에서 단비는 오늘은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도 별로 내키지 않아 샤워만하고, 침대에 같이 누웠다. 단비는 술 없냐고 물어봤다. 그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두 개 꺼내와 하나는 단비를 주고, 하나는 그가 마셨다. 단비는 순식간에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소주 없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소주는 없는데.”

단비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캔맥주 세 개를 더 가져와 아무말 없이 다 마셔버렸다. 그는 저녁에 나오몃ㅓ 배가 기형적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금붕어에게 밥을 주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 금붕어는 언제나 입을 뻐끔거렸다. 단비에게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지독한 냄새가 온 방안을 진동시켰다.

“냄새가 나는 것 같군.”

술기운이 올랐는지 단비는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저는 고아예요. 알겠어요? 고아란 말이에요. 애초부터 엄마, 아빠의 얼굴은 본 적도 없는 고아란 말이에요. 엄마가 비단을 사가지고 온다는 것도 다 내가 지어낸 말이어에요. 나를 지금 미친 여자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술마시고 술주정한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어짜피 나는 누구와도 같이 지내본 적이 없었고, 언제나 나 혼자였으니까요. 당신ㅇ느 내 맘을 모를거에요.”

그는 단비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그런게 별로 중요한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도 아홉 살 때부터 고아였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자기를 우롱하는거라며 비웃었다. 사실 그도 그녀를 설득시킬 맘은 없었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비는 그날 밤 늦게까지 자기가 고아였다, 자기는 불행하다, 자기는 더럽다, 도통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그는 단비를 승용차에 태워 가게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주고, 가게 앞으로 몰고가 차를 세워둔 채 내리지 않았다. 화양리핸드폰은 여전히 그곳에 앉아있었다. 오늘은 화양리핸드폰을 따라가 보기로 마음 먹었다. 레코드 가게의 문이 열리자 화양리핸드폰은 계단에서 일어나 서성거리더니 핸드폰을 빼어들고 귀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 중얼거렸다. 그는 금붕어의 밥을 또 못줬다는 생각을 했다. 마대걸래를 한 손에 들고 문을 나온 레코드 가게 주인은 옆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어 마대를 빨면서, 화양리핸드폰을 보면서 입을 쩍쩍거렸다. 레코드 가게 유리문 안쪽에서 마대질을 하고 있던 그 사람의 입에서 귀가 찌저질 듯한 괴성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듣기 싫은 음악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화양리핸드폰은 귀에서 수화기를 떼고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다시 핸드폰을 귀에 갖다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승용차를 서서히 몰아서 화양리핸드폰이 버스정류장으로 갈 때까지 그의 거동을 감시하면서 핸드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화양리핸드폰이 버스에 올라탔다. 어제와 똑 같은 209번 버스였다. 그는 그 버스뒤를 따라가면서 내리는 승객마다 화양리핸드폰이 있나 확인했다. 그런데 재수없게 그의 차 바로 앞에서 신호가 걸리는 바람에 그는 그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신호가 바뀌자 속도를 올려 209번 버스를 뒤쪼자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포기하고 내일 다시 한 번 추적해보기로 다짐하고 그는 차를 돌려 화양리로 향했다.

가게앞에 도착하여 차를 주차시키고, 계단을 올라갔을 때 비디오 감상실 출입문 앞에 낯익은 사람 둘이 와있었다. 대학생인 듯 보이는 그 남자와 그 여자였다. 팔짱을 끼고 서서 그를 비웃듯이 바라보고 있던 그 여자는 껌을 너무 씹어대서 진하게 칠한 립스틱에 침이 고여 번쩍거렸다.

“아저씨 영업 안하실 겁니까?”

어젯밤 잠을 못잤는지 눈이 쏙 들어간 그 남자가 말했다. 오늘 저녁에 오면 재워줄려고 했다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이젠 우리를 못쫒아내겠죠? 오전 열한시 반밖에 안됐으니 불법 영업도 아니고, 우리도 손님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아저씨 빨리 방 주세요.”

이 남자는 여기가 여관방인줄 알고 있는 듯, 방 달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 불쾌했지만, 복잡한 건 더 불쾌하기 때문에 아무말없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쾌쾌한 냄새는 뭡니까? 뭐 이렇게 더워요?”

그는 비,디,오,감,상,실, 이라고 쓰인 참문쪽으로 가서 디,감,실, 이라고 쓰인 세개의 창문을 세차게 열어 젖혔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비디오를 고르라고 주문했다.

“뭐 야한 것 없습니까? 우리나라 것 말고 외국 것 화끈한 걸로 하나 골라주시죠?”

열린 창문으로 바깥의 뜨거운 열기가 더 들어오는 것 같았다. 밑에서 쾅쾅거리며 시끄러운 음악이 그의 귀를 멍멍하게 했다. 그는 그들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계단을 내려가 그 레코드 가게로 들어갔다. 주인의 매서운 눈초리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레코드 가게 주인은 불룩 튀어나온 배를 움켜잡고 무언가를 식히고 있는 듯 했다.

“음악소리가 너무 큰 것 같은데요?”

“우리 나중에 얘기합시다. 손님들도 이렇게 많은데 지금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잖소?”

그는 레코드 가게 주인 말이 만즌 것 같아 알았다고 말한 후 그 레코드 가게를 나와서 비디오 감상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몰상식한 그 남자 그 여자가 단비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무엇하는 짓이냐고 호통을 치고, 그들이 원하는 야한 비디오를 재빠르게 틀어주고, 방안에 몰아넣었다. 그 방안에서 ‘미친놈 아냐’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들어간 방안에서는 내내 빨간 불빛이 문에 붙어있는 창에 비추었고, 문틈으론 신음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비디오가 끝났는데도 그들이 나오지 않자 그는 그 방의 뭄을 열어보았다. 그 남자 그 여자는 서로 중요한 부분만을 열어논 채 잠이 들어있었다. 저녁 열시가 되어서야 나온 그들은 뭐 이런 재미없는 비디오가 있냐고 투덜거리면서 비디오 감삼실을 나갔다. 습기로 눅눅한 비디오 감상실 안은 무더위로 공기의 흐름이 멈춘 듯했고, 어항속의 배가 불룩 튀어나온 금붕어는 여전히 입을 뻐끔거렸다.

다음날 그는 가게 옆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비디오 감상실을 들어가지 않은 채 화양리핸드폰을 지켜봤다. 레코드 가게 셔터가 올라가자 화양리핸드폰은 주위를 약간 서성거리더니 핸드폰을 귀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는 화양리핸드폰을 뒤따라 버스에 올라탔다. 화양리핸드폰이 버스값을 내지 않았는데도 버스 운전기사는 아무말없이 무덤덤하게-마치 화양리핸드폰이 투명인간이라도 된듯한 착각-운전만 했다. 왼손으로는 버스 고리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핸드폰을 움켜쥐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화양리핸드폰의 눈, 눈동자위로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구부려뜨렸다. 원모양으로 된 버스 손잡이가 좌우로 흔들렸다.

화양리핸드폰이 내린 곳은 이 버스 종점인 서울역이였다. 그는 화양리핸드폰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기위해 먼저 내려 역대합실로 가는 척했으나, 화양리핸드폰은 그를 언제나 빈 허공의 공간으로 취급하였다.

화양리핸드폰은 서울역 시계탑 주위를 몇 번 왔다갔다 한 후 1호선 지하철 역 지하로 모습이 사라졌다. 그는 화양리핸드폰을 뒤따라 가기 위해서 지하로 접어들었는데 화양리핸드폰을 발견할 수 없어서 당황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어서 그는 시선을 집중할 수 없었다. 개찰구 왼쪽으로 큰 통로가 하나 있었다. 상당히 넓게 자리하고 있는 공터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곳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고, 몇 몇 부랑자들만이 그 곳에 자리를 펴고 누워있었다. 자고 있거나 벽면을 한 없이 쳐다보고 대화를 나누는 부랑자들, 그리고 반대편에는 부랑자는 아닌 것 같은데 대여섯 사람이 모여서 화투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어이없이 쳐다보고 있는데 “어이 한 판 할려?” 왼손에 천원짜리 몇 장을 들고 세수도 하지않은 얼굴의 오십대 중반 정보 아저씨가 그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들 옆에는 부랑자 한 사람이 시끄럽다고 고함을 질렀다.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계속 화투 놀이를 하고 있던 아저씨가 “안 할꺼면 꺼져!” 라고 말한 후 다시 화투판에 시선을 옮겼다. 경찰 제복을 입은 두 사람이 짐수레를 끌고 반대편 입구로 사라졌다.

그의 눈이 주위를 샅샅히 둘러봤지만 화양리핸드폰의 모습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더 깊숙이 들어가봤더니 공간은 넒은데 사람들은 더욱 보이지 않는 곳이 보였다. 그곳에선 부랑자들이 누워있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계속 발걸음을 옮겨 그가 들어왔던 반대편의 다른 입구로 나가보았더니, 몇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모여있었다. 그는 대번에 화양리핸드폰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채고 시선을 집중했다. 모두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그들은 오십대 정도로 보이는 이가 두 명, 십 대 정도로 보이는 소년들이 세 명이 모인 가운데서 화양리핸드폰이 핸드폰을 들고 그들앞에서 연설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그들에게 다가갔지만 그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아서 화양리핸드폰이 하는 얘기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이걸루 누구와 통화하는지 알아? 나느 이걸루 대통령과 통화를 하지. 대통령은 우리 아버지거든. 지금은 미국에 있어. 미국에서 자리잡고 있는 대장과 통화하는거야. 나를 언젠가 자기 동생이라고 하면서 나한테 자꾸 미국으로 오라는거야. 너희들은 내게 잘 보여야돼.”

핸드폰을 그들 눈앞에 똑바로 정지시켜 보여주면서 힘있게 자랑했다. 다른 이들은 모두가 부러운 눈으로 핸드폰으르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한 번 통화할 수 있어?”

“너는 안돼. 이게 아무한테나 준다고 통화할 수 잇는 건줄 알아? 너희 같은 애들은 천 번을 넘어져도 이걸 만질 수도 없지.”

한 꼬마애가 자기의 무릎을 만졌다. 화양리핸드폰의 쭉 펴진 어깨를 보면서, 그는 화양리핸드폰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화양리핸드폰이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화양리핸드폰이 부랑자들의 대장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는 곧장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금붕어 밥을 주지 않은 자신은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라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 전화기를 쳐다보았다.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싶었지만 전화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 그는 포기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여전히 웅크린 자세로 레코드 가게앞 계단에 앉아있는 화양리핸드폰의 핸드폰은 유난히 빛나보였다. 그는 계단을 올라고 문 열쇠를 꽂았는데,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단비가 누워있다가 그를 보고 무척 화난 목소리로 대들었다.

“왜 나를 피하는거죠? 제가 싫은거죠? 그렇죠? 그렇죠?”

미처 대답할 틈도 주지않고 단비는 울고 있었다. 그는 내가 왜 너를 피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어제는 왜 안나온거에요?”

단비가 그에게 안기면서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는 단비의 머리에 키스를 한 다음, 소파쪽으로 천천히 끌고 갔다. 그와 단비가 섹스를 할 때, 배가 불룩하게 나온 금붕어는 여전히 입을 뻐끔거렸다.

울음이 그친 단비에게 그는 말했다.

“니 이름이 뭐야?”

“단비!”

“이름이 이쁜데!”

“응 우리 엄마가 나중에 나를 위해 비단으로 만든 옷을 사가지고 오신다고 했거든. 그 이후레 나의 이름은 비단을 거꾸로 한 단비였어요. 싫어! 싫어!”

그는 문득 붕어밥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단비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풀고 일어나서 무릎까지 내려간 바지를 입고 지퍼를 올렸다.

“저는 아빠, 엄마 다 있어요”

그도 아버지는 있었다고 단비에게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가 아홉살 때 사업에 망해 그 이후로 자기는 고아원에서 지냈었다고, 그 고아원에서 아버지를 몇 번 본 후에 오랫동안 오지 않아 원장님에게 물어봤더니, 아버지는 죽어버렸다고, 더 정확히 얘기해서 자살했다고 단비에게 얘기했다. 그 고아원이 싫어서 몇 번이고 뛰쳐나와 하루종일 영화극장에서 쭈그리고 앉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잠잤던 기억이 난다고 단비에게 말했다.

“엄마는요?”

“몰라, 엄마 얼굴은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런 말을 왜 저에게 하죠?

그는 재미없을 것 같아서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갑자기 생각나서 얘기한거라고 했지만, 단비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임신 2개월째래요. 어제 병원에 가봤어요.”

그는 음악 소리가 크다고 느꼈다. 바닥이 둥둥 울려서 꼭 무너져 내려버릴 것 같았다. 그는 단비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화양리핸드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왼쪽 골목, 오른쪽 골목, 둥근 무늬의 빨간 보도블럭을 따라 버스정류장까지 시선을 옮겨봤지만 화양리핸드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정신없이 두리번 거리고 있을 때 레코드 가게주인이 마대걸래를 들고 밖으로 나와 그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레코드 가게 주인은 마치 마대자루를 칼처럼 휘두르는 무사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해 그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오, 음악소리가 크다고 말할 참인가 보군?”

그 레코드 가게 주인은 마대자루 중간부분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화양리핸드폰 못봤습니까?”

“머? 화양리핸드폰? 무슨소리야? 당신 미쳤어? “

“아침마다 여기서 핸드폰을 들고 않아있는 사람 있잖습니까?
“아 그 거지새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 당신하고 아는 사람이야? 어쩐지…”

입을 쩍쩍거리다가 여전히 마대중간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발밑 계단에 침을 텍 밷고 난 후 “재수없는 두 사람이 내 주위에 있으니 이렇게 장사가 안되지.” 라고 말하면서 들어갔다.

그는 주위를 다시 둘러봤지만 화양리핸드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계단을 올라가 비디오 감상실 안으로 들어갔다. 단비는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말하고 출입문을 나갔다. 그는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오늘도 그 남자 그 여자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면 절대로 저 소파에는 앉지못하게 잘 감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녁 열 한 시 반이 조금 넘었는데, 그 남자 그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오면 그들을 재워줄 생각이었다. 그 때 문이 열렸다. 현관물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그 남자 그 여자가 아니라 단비였다.

그는 단비와 집으로 가서 섹스를 한 다음,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 가서 캔맥주 다섯개를 꺼내왔다. 단비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이름을 물어보지 않는군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단비의 가슴에서 형광등의 빛을 받아 은색을 내뿜었다.

“저는 아빠, 엄마가 다 계셨어요. 엄마는 어떤 남자하고 눈이 맞아 도망갔데요. 엄마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적어도 그 여자 보다는 나았겠죠. 아빠는 엄마가 나간 후에 어떤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어요. 나보고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라는 것이었어요. 나는 엄마라고 부르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금방이라도 오실 것 같았거든요. 그 여자는 나를 언제나 못살게 굴었어요. 그 여자가 보내는 눈빛 때문에 나는 하루도 제대로 숨쉰적이 없었거든요. 아빠는 나에게 너무 무관심했기 때문에 아빠에게는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여자가 죽이도록 싫었지만, 나는 아빠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곤 언젠가 그 여자가 저를 죽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됐어요. 그 눈빛, 그래요 그 눈빛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거든요. 미칠 것만 같았어요. 언제나 그 여자는 나의 목을 쳐다봤어요. 나의 목을, 그래서 나는 집을 나왔죠. 그 여자에게 목졸려 죽는 것보다 그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단비가 거짓말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 내게 거짓말하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붕어밥을 주지 않은 자기가 더 어리석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못했다.

“왜 나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죠? 지례 짐작하는 건가요? 내 직업이 뭔지 궁금하지 않아요? 나를 무시하는 거낙요? 왜 물어보지 않죠? 관심이 없군요. 그래요. 당신은 언제나 그래왔으니까.”

그는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 금방이라도 울 듯 대들었다. 그는 모르겠다고 대답하고 자기는 지금까지 중요한 것을 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에게는 이해못할 소리였다.

“나는 창녀에요. 창녀라구요. 남자들 앞에서 가랑이를 벌리고 돈을 받는 창녀라구요. 이제야 알겠어요? 지금 내가 이러는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렇게 잘못하면서 세상을 살지 않았거든요. 이제야 알겠어요? 내가 미친년이라구요.”

그는 중요하지 않다고 다시 말했다. 단비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임신 2개월하구 7일째래요. 이런 말을 왜 하냐구요? 나를 거치고 간 수많은 남자들중에 하나가 아니냐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요 당신 말대로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오늘이 우리가 만난지 2개월 7일이 되는 날이에요. 그래요 중요하지 않을 얘기를 하고 있군요.”

그의 눈에 전화 수화기가 들어왔다. 그는 전화하고 싶었다. 단비는 그 얘기 이후 침묵을 지키다 이내 울음을 터트리고 잠들어버렸다.

다음날도 화양리핸드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저녁에 대학생인듯한 그 남자 그 여자도 비디오 감상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에도 화양리핸드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단비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 남자 그 여자도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들 네 명의 모습은 그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문득 화양리핸드폰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다음날 그는 서울역 지하도에 갔다. 그가 저번에 본 그 자리에 가봤지만 여전히 부랑자 몇 명 만이 각각 자기자리를 갖추고, 눅눅하고 더러운 담요를 덮고 누워있었다. 그는 그 중 한 사람에게 접근했다. 바닥에는 담요가 있었지만 몸 위쪽은 덮지 않고, 신문지로 얼굴 부위만 가린 채 누워있었다.

“저… 여보세요.”

누워있던 부랑자가 신문지를 재끼고 쾡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그 사람이 자기를 보고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뒤통수 너머를 바라본다고 느꼈다.

“혹시 화양리핸드폰 못봤습니가?”

그의 뒤통수 너머를 바라보던 부랑자가 쾡한 눈을 하고 “사람살려”라고 조용히 말한 후 신문지로 다시 얼굴을 가렸다. 그는 이 사람이 화양리핸드폰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화양리핸드폰이 당당하게 들고 있던 핸드폰 생각이 났다. 그는 그 때 화양리핸드폰하고 같이 있던 일행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누워있는 부랑자마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그 때 그 곳에 같이 있던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오늘 반드시 화양리핸드폰을 찾아야만 했다. 화양리핸드폰을 찾으면 뭔가 해 줄 말이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지하도 입구 계단에 앉아있는데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저녁시간이 늦어지자 그 동안 보이지 않았던 부랑자들이 이 곳 저 곳에서 나타나 큰 지하도 통로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가 일어서서 그곳으로 가보니, 몇 명의 부랑자들이 그를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그들에게 가서 화양리핸드폰을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부랑자 수는 삼십여 명이 넘을 듯했다. 어린이, 어른, 여자, 남자, 등등 특정한 것 없이 그들 모두 비슷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통로에는 수 십개의 형광등이 천장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안은 대낮보다 훤했다. 화양리핸드폰은 밤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계단에 자리를 잡아 쭈그리고 앉아있다가, 잠이 들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깬 그는 몸이 욱씬 춥다는 걸 느꼈다. 깨끗하고 깔끔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했고, 부랑자들은 여전히 벽쪽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지하도 입구 계단을 올라가 나가보니 밖은 아침이었다. 다시 내려가 그 지하 통로를 둘러보고, 화양리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비디오 감상실이 있는 화양리로 향했다. 화양리핸드폰이 그 곳 어디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화양리 부근을 샅샅히 살펴봤지만 화양리핸드폰을 찾을 수 없었다. 저녁이 되자 갑자기 불어난 사람들과 차들로 시끄럽기만 했다. 그가 수 많은 네온싸인이 반짝거리는 화양리 육교밑을 걸어갈 때 파출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실종됐습니다. “

“천천히 말해 주세요. 실종된 사람 이름과 당신과의 관계를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왼쪽 팔꿈치를 책상머리에 대고 비스듬하게 앉아있던 그 경찰관은 아무 관심도 없는 듯했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던 연필은 경찰관 오른손 손가락에 끼어있었다.

“화양리핸드폰입니다.”

“예? 다시 말씀해주세요”

“화양리핸드폰입니다. 제 가게 앞에서 그 사람은 아침마다 멋진 핸드폰을 들고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없어진지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경찰관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모서리 앞에 섰다.

“여기는 정신병원이 아냐. 당장 나가.”

경찰관은 오른쪽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는 경찰관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스스로 죽었으면 하고 바랬다. 경찰관 몇 명이 그의 어깨를 붙잡고 파출소 밖으로 내동댕이 쳤다. 그는 화양리핸드폰을 찾아야 한다고 파출소에 대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잠이 들었다.

그가 깬곳은 파출소 유치장 안이였다. 어제 술을 잔뜩 마신 그는 길바닥에서 자다가 파출소에 끌려왔는데, 그가 경찰관 허리에 찬 권총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경찰관 몇 명이 그를 사정없이 때리고, 유치장에 가뒀다는 것이었다. 그는 몇 가지 조서를 썼다. 경찰관이 다리를 떨고 있었는데, 그는 그 다리에 신경이 쓰였다. 경찰관의 검은색 구두가 형광등 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파출소를 나온 그는 비디오 감상실로 향했다.

그런데 가게 앞에 낮익은 사람이 보였다. 화양리핸드폰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웅크린 자세로 레코드 가게 계단앞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원모양인 빨간색 보도블럭은 길위에 일직선으로 뻗어있었다. 화양리핸드폰의 손에는 핸드폰이 없었다. 화양리핸드폰 눈은 예전의 모습이 아닌, 당당함이 없어졌다. 그는 헬쓱한 얼굴을 한 화양리핸드폰 곁으로 다다가서 무엇인가를 물어보려 했는데, 화양리핸드폰은 이 세상의 물체가 아닌 다른 세상의 물체를 보고 있었다. 그는 금붕어 밥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디오 감상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인기척이 있어 깨어보니 대학생인듯한 그 남자 그 여자가 그를 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팔짱을 끼고, 두껍게 칠한 립스틱을 너덜거리면서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저씨 장사 안하실겁니까? 아저씨 이래 가지고 돈 벌겠어요?”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남자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서 그만뒀다. 그는 야한 비디오를 틀어주고 또 다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벌써 저녁이었다. 그들이 있는 받으로 갔는데,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낮에 비디오를 봤던 그 남자 그 여자였다.

“자고 싶으면 자고 가세요.” 그는 금붕어의 밥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우리가 거지인 줄 압니까? 하기야 옷만 번지르르 입었지 거지나 다름없지 뭐. 그래도 다행인게 깡패한테 맞는 거지는 아니니까.”

“무슨 소리요?”

“무슨 소리는 무슨 소리에요? 요 앞에서 깡패한테 맞는 거리를 우리들이 봐서 하는 얘기 아닙니까?”

화양리핸드폰이 틀림없었다. 그는 문을 열고 계단을 재빠르게 내려갔다. 왼쪽 오릅미터 전방에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가 거기에 도착했을 땐 청년 세 명이 누운채 웅크리고 있는 화양리핸드폰을 둘러서서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무슨짓이야?”

그가 청년들을 말렸지만 그 청년들은 같은 패라고 하면서 그도 함께 때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내놔새꺄.”

그 청년들이 화양리핸드폰 보고 하는 얘기였다. 화양리핸드폰은 잠바안에 그 청년중에 한 사람의 핸드폰을 숨겨놓고 필사적으로 놓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화양리핸드폰에게 내어 주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버텼다. 그렇수록 그 청년들은 화양리핸드폰과 그를 사정없이 때리고 짓밟았다. 화양리핸드폰은 죽으면 죽었지 핸드폰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웅크린 화양리핸드폰을 그 청년들르부터 보호하려고 화양리핸드폰을 꼭 안았다. . 그래서 더 많은 구타를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청년들이 그와 화양리핸드폰을 뜯어내려고 하면서, 그의 몸은 일으켜지더니 몇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정신차리려는 순간 허공에 뜬 듯 땅바닥에 내팽켜쳐졌다. 보도블록 왼쪽에 다리잡은 소방호스봉은 빨간색이었다.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둥근 무늬가 있는 빨간색 보도블록은 네온싸인 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눈두덩이의 감각이 마비된 듯했고, 입술 부위에 진한 액체가 만져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는 화양리핸드폰을 찾았지만, 몇 명 지나가는 사람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비디오 감상실을 향해 서서히 걷기 시작했다.

계단을 들어서자 암흑으로 덧칠한 벽과 찜통 같은 더위로 그의 목이 죄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한 발자국 디딜때마다 발바닥에는 습기로 촉촉한 끈적거림에 미끌려 다리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열쇠를 꽂고 문을 연 그는 몸을 틀어 어둠속에서 벽쪽의 스위치를 찾아 눌렀다. 순간 스프링의 힘을 받은 문이 스스로 닫히는 것이 보니자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는 단비가 반쯤 꺽인 자세로 엎드려 있었고,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긴 손톱대신 붉은 피로 그것을 메우고 있었다. 입에는 거품이 마른 흔적이 있었고, 단비의 오른손 손가락위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은 칼이었다.

어항안의 금붕어가 입을 뻐끔거리면서 미세하게 꼬리를 흔들어댔다. 누워있는 단비를 지나 어항쪽으로 간 그는 고기밥 봉지를 뜯어 어항안에 전부 털어넣었다. 동글동글한 붕어밥 수 백개가 물 속으로 천천히 내려가 바닥에 가라앉기도 전에 금붕어는 수 십개의 밥을 삼키고 있었다. 밥을 먹는 것을 확인한 그는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아! 자넨가, 어떻게 지내지? 미국으로 오게. 내가 좋은 자리 봐놀 테니. 난 대통령 아닌가. 하하, 내가 못할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네….”

	" Memories & Creative "